조선시대의 회화는 유교문화의 전형적인 산물이다

1. 회화가 특히 다양한 양상을 띠며 진작되었던 것은 역사시대 중에서는 조선시대이다.
조선시대에서는 주지되어 있듯이 억불숭유정책을 철저하게 폈고, 이 떄문에 문화의 성격도 불교를 국교로 했던 고려시대와는 대단히 차이가 많은 양상을 드러내게 되었다. 회화도 이러한 배경하에서 발전하게 되었고 또 그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말하자면 이 시대의 회화도 이러한 상황하에 태어난 유교문화의 한 전형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불교회화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화려하고 짙은 색채화보다는 먹과 담채를 위주로 하는 수묵화가 조선시대 전반을 통하여 시종 그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던 것도 잉러한 배경과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다. 이 점은 마치 도자기 분야에서 고려시대의 약간은 화려한 느낌의 청자가 소박한 분청사기와 깔끔하고 맑은 백자로 대치되었던 것과도 비교된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와는 다르게 억불숭유정책 때문인지 승려화가들의 활동이 거의 사라지고 왕공사대부와 화원 두 계층의 화가들이 화단을 이끌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화원들은 조정이 국가적 필요에 따라 세운 도화서에 소속되어, 국가적 행사들을 도현하고 황공사대부들의 초상화를 제작하는 등 기록적 성격의 그림들을 제작하면서, 여가에는 사대부들의 청에 따라 그들의 취향에 맞는 각종 감상화들도 그렸던 것이다. 한편 사대부 화가들은 화원들을 계도하는 입장에 서기도 하고, 중국으로부터의 새로운 화풍을 먼저 받아들이고 소화하여 자신의 화풍을 이루기도 하면서, 화단을 앞장서서 이끌어가는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이들 왕공사대부 화가들과 화원들이 주된 역할을 했고, 이 때문에 그들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지 않을 수 없다.
2.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소재의 회화가 일찍부터 발전하였다.
산수화와 인물화는 물론 영모와 화조 그리고 사군자 등은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또한 이 시대에는 그림의 소재에 대한 서차와 경중을 정하여 놓기도 하였다. 이 점은 화원의 시취에서 잘 엿볼 수 있다.
즉 화원을 시험을 쳐서 선발함에 있어서 대나무를 1등, 산수를 2등, 인물과 영모를 3등 화초를 4등으로 하고 그 중에서 두 가지를 택하게 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대나무를 1등으로 한 것은 송나라의 소식과 문동을 중시하던 고려시대의 문인화관이 계승되어 풍미했던 영향으로 보이며, 또한 이를 통해 조선조 초기 사대부들의 회화관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산수를 2등으로 한 것은 그것이 회화의 근간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동양의 전통적인 자연주의적 또는 자연존중의 사상에서 나온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인물과 영모를 3등으로 규정한 것도 주목된다. 특히 인물화는 산수화와 함께 회화의 쌍벽이라 할 수 있고, 또 왕실과 사대부들의 초상화 제작이 화원들에 부여되는 가장 중요한 임무였던 것을 고려하면 그 등급이 너무 낮은 감이 있다.
즉 실제적인 면에서 인물은 1등 과목에 해다오디는 비중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원이 입신양명하는 데에 있어서도 가장 도움이 되는 분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굳이 3등으로 정한 것은, 비록 3등으로 정해 놓아도 두 과목을 택하게 되어 있기 떄문에 그 두과목 중에서 한 과목은 그 중요성 때문에 으례 인물을 택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화초를 4등으로 한 것은, 실제의 비중면에서 그것이 다른 과목들을 앞지를 수 없고 또 장식적 목적의 그림들에 주로 그려졌기 떄문에 낮게 평가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유가 어떻든, 화초는 화원을 뽑는 시험에서 이처럼 가장 낮게 ㅕㅇ가되었던 것이 사실이고, 또한 이 떄문에 이 분야의 회화가 다른 분야에 비해 크게 발전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화초에 비해 비교적 등급이 높은 영모도 마찬가지이지만, 화초가 조선후기의 김홍도 등의 일부 화원들을 제외하고는 직업적인 화원들 사이에서는 별로 활발히 제작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시험제도에도 한 가지 원인이 있었다고 믿어진다. 이는 마치 요즘의 대학입시에서 국어, 영어 수학 들의 과목들이 매우 중요시되고 기타의 과목들은 상대적으로 소흘히 취급되고 있는 경향과 마찬가지 현상이라 하겠다.
영모나 화초 분야에서는 화원들보다는 직업화가로서의 출세가 필요치 않았던 왕실 출신의 화가들이나 사대부 화가들이 즐겨 그렸고, 그들에 의해 이 분야가 주도된 듯한 느낀을 받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암, 신사임당,조속과 조지운부자,이영윤,김식,심사정등 영모나 화초분야에 뛰어났던 화가들이 왕실이나 사대부 출신인 것이 주목된다. 고양이를 잘 그린 화원 출신의 후기 화가 변상벽 같은 화가는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오히려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발췌:동양의 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