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회화 즉 그림은 조각 각종 공예 건축과 함께 미술의 한 근간을 이룬다. 그러나 회화는 조각이나 공예 또는 건축 등의 입체적인 미술과는 달리 일정한 평면에 자연경관이나 사물의 실체, 또는 인간의 생각을 표현하는 `평면미술`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평면 미술로서의 제약 떄문에 회화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표현방법과 기법을 지니게 되어 결국 여타의 다른 미술과는 구분되는 특수성을 지니게 된다.
또한 회화는 미술의 어떤 다른 분야보다도 인간의 다양한 사상이나 철학을 많이 담아 왔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을 민감하게 반영하면서 변화의 첨단을 걸어왔다. 회화는 이처럼 형태면에서는 비 입체적이며 내용면에서는 복합적이어서 그리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이해하기도 다른 분야에 비해 일반적으로 어렵게 느껴진다.
이런 점에서 보면 회화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높은 차원의 창의력의 한 대표적 표현체인동시에 그 척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결국 회화의 발달 여부는 다른 미술분야나 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한 국가나 민족의 창의력 내지는 문화 역량을 가늠케 하며 그 특성을 파악케 하는 데 좋은 지표가 된다. 이 때문에 회화는 일반에게는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순수한 감상의 대상이 되지만,미술사가에게는 역사적인 기록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사료가 된다.
회화를 참되게 감상하려면 그것을 꿰뚫어보는 보는 것이 필요하며, 또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인도 미술사가의 입장에 서는 것이 요구된다.
미술사가는 그림을 단순한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것을 사료로 파악하여 역사적 현상의 규면이나 복원을 꾀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의 작품을 분석해서 그 양식저 특징이 무엇인지를 규명할 뿐 아니라 그것이 전대후 후대 회화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또 다른 지역의 미술과는 어떠한 연관이 맺어져 있는지, 그 작품이 반영하고 있는 사상이나 철학은 무엇인지, 그것이 반영하는 시대성은 무엇인지 등등의 다양한 역ㅇ사적 현상들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역사가적 입장에서 작품을 사료로서 꿰뚫어 보는 눈은 타고난 감수성 이외에도 오랜 수련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또한 미술사가는 문헌사료와 작품사료를 함께 다룰 수 있어야 하며, 이 둘 중에서 어느 한 가지도 소흘히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특히 작품사료를 다룰능력을 갖지 못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술사가는 될 수 없다. 그럴 경우 그는 미술에 관한 하나의 문헌사가의 입장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로 작품사료는 잘 다루면서 문헌을 섭렵하지 못한다면 그 역시 반쪽의 미술사가밖에는 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문헌사료과 작품사료를 함께 구사할 능력을 필요로 하기 떄문에 좋은 미술사가로 성장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 및 경험을 필요로 한다. 좋은 감상가가 되는 것도 대체로 마찬가지이다.
회화의 감상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감상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느 정도의 `미술사가적 입장`에 스스로 서서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하나의 작품을 보면서 그것이 무엇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왜 아름다운지, 그것이 감상자에게 무엇을 호소하는지를 느껴보는 것 외에, 그것의 구도나 공간개념, 세부처리, 색체감각 등의 화풍상의 특징들을 뜯어보고, 더 나아가서 그것이 동일 화가의 옛날 작품과 비교하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다른 화가들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또 그의 작품이 달라졌으면 왜 어떻게 달라졌는지 등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이러한 태도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습관화하면 그는 은연중 심도있는 감상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미술사가적 감상의 안목도 지니게 될 것으로 본다.
인류가 회화를 발달시키기 시작한 것은 2만년 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기원은 풍요와 다산 등의 절박한 생존상의 욕구와 직결되어 있다. 이 점은 잘 알려져 있는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이니 프랑의싀 라스코 동굴 등을 비롯한 구석기시대 동굴벽화들을 통해서 쉽게 확인된다. 말하자면 회화는 인류의 생활과 직결된 주술적 기능을 띠고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넒은 의미로는 실용적 목적에서 제작되었던 것이다.
[발췌 : 동양의 명화]
다음편에서는 동양회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